사람은 매우 이성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우리네 사는 모습이 '비합리성'으로 일그러져 있다.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게임은 바로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을 낱낱이 보여준다. 2명의 공범자가 죄를 범한 후 경찰에 체포되어 격리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는다.

만약 범자가 모두 범죄를 부인하면 이들은 석방된다. 1명은 자백하고 다른 1명은 부인하면 자백한 피의자는 석방되지만 부인한 피의자는 15년의 중형 처벌을 받는다. 둘 다 자백하면 모두 5년형을 처벌 받는다.

이 상태에서 이기심이 지배하는 2명의 죄수에게 최적 전략은 '자백'하는 것이고 이들은 결국 모두 5년간 감옥생활해야 한다.

만약 이들이 이기심을 벗어나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둘다 '부인'해서 모두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이기심은 공동체 전체의 바람직한 상태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인간의 이기심, 분노, 편견과 같은 감정이 몸통이고 합리성 같은 이성은 그저 꼬리에 불과한 것 같다. 특히 정치판에서 이런 인간의 광기는 두드러지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4개월째 대한민국을 달구는 촛불집회와 탄핵은 이성과 감정이 충돌하는 용광로이다.

평범한 국민들은 어느날 갑자기 터져나온, 그러나 너무도 명백한 대통령의 부패행위에 분노하였고 이에 대한 합리적 선택으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렇다. 돌이켜보면 광장에 몰려든 수백만명의 힘없는 민초들의 이성에 근거한 명령은 '대통령 퇴진'이다. 결코 야당으로의 정권교체나 특정한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의 결정이 아니다.

그러나 합리적 이성이 지배한 광장의 함성과 달리 정치권의 꾼들에게 광장의 촛불은 이기심을 타오르게 만들었다. 퇴진을 완성하기 위한 탄핵열차가 이상 조짐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기적인 정치꾼들이 조장하는 그들만의 잔치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탄핵에 이념과 진영의 논리를 덧씌워서 자신만의 아방궁으로 만들려고 몸부림친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실세들과 공모해 국정을 농단한 헌법파궤 행위는 의당 처벌받아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은밀한 사생활을 신변잡기처럼 들쑤시고 사드배치를 중단하라 막무가내 식의 목소리를 높이며 새누리당을 범죄집단으로 도덕적 파멸의 처단을 주장하는 모습들에서 광기의 음습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도덕적 주장과 처단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광장에 모여든 그 작은 손길들이 기원한 것은 대통령 퇴진과 탄핵 의결 및 인용이다.

허나, 갑자기 눈 앞에 떨어진 횡재처럼 대통령 자리에 눈이 먼 자칭 대선잠룡들은 이 작은 촛불의 기도를 그저 그들의 대권을 향한 꽃길을 밝혀주는 가로등으로 보는가 보다. 왜 대선 프레임 짜는 데 몰두하지 말고 탄핵인용이나 대통령 자진 사퇴를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정치인이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

이렇게 탄핵열차는 앞으로 달려가는데 이를 막으려는 소위 '태극기'열차가 역주행해 오고 있다. 이들이 충돌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국가 이익의 손실과 민생의 붕괴를 염려하는 자는 그 어디에 있는가?

탄핵제도는 14세기 영국에서 국왕에 대한 의회의 견제책으로 발전되었으며 18세기 미국 건국헌법에서 채택되었다. 약240년의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하원으로부터 탄핵소추당한 대통령은 오직 3명뿐이었고 이들중 상원으로부터 탄핵심판의 유죄판결을 받아 파면된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다.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사건으로 전세계적 망신을 당했던 닉슨 대통령도 하원의 압도적인 탄핵소추의결이 이루어진 후 자진 사퇴를 선택했다.

현직 대통령의 막강한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워터게이트사건을 추적해서 파헤친 언론과 특별검사 그리고 의회는 탄핵유죄평결과 파면에 의한 국가 이익의 혼돈 보다 자진 사퇴를 통한 문제해결을 선택했다.

탄핵은 현실적으로 정치의 외피를 입을 수밖에 없지만 본질적으로 법률적인 논리 위에 서 있다.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하여 권한행사가 이루어진 그 남용과 일탈의 내용을 법논리적으로 조명해야 한다.

따라서 여기에 통치행위 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들을 끌어들이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 특히 의회에서 탄핵의 소추와 심판을 모두 의회에서 수행하는 미국은 국익 손실의 극소화라는 관점에서 탄핵의 종결점을 찾았다.

미국이 탄핵으로 인한 헌정중단을 막으면서도 대통령의 권력남용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것은 탄핵이 특정 집단의 정치적 이익이나 논리에 이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기인한다.

워터게이트사건도 집권여당인 공화당과 대통령이 야당인 민주당을 도청해서 탄압하려는 정치적 사건이지만 탄핵과정에서 대통령의 위증과 직권남용에 초점을 두었고 닉슨 사임 후 공화당의 포드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 유명한 백악관 섹스 스캔들로 전세계를 경악시켰던 빌 클린턴 대통령도 하원의 탄핵소추를 받았지만 임기를 마친 후 굳건히 살고 있고 영부인이었던 힐러리는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 문턱까지 다가섰었다.

탄핵으로 인해 어느 당이, 어느 후보가 당연하게 대통령 자리의 승자로 미리 정해지지도 않고 그 뻔한 대통령의 형사처벌이나 정치보복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제 한국호를 뒤흔들고 있는 탄핵의 태풍이 절정을 향하고 있다.

벚꽃 대선과 여당의 몰락에 기뻐하고 있을 것인가?

공사장의 노동자들, 피자집의 퀵배달기사, 옆집 아줌마, 아저씨들이 그 힘없는 촛불 하나 달랑들고 추운 광장으로 달려간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해보라.

여의도 한 복판에 그 비싼 수백평의 대선 캠프 만들어서 샴페인 터뜨리라고 그들이 광장에서 외친게 아니다.

합리적인 이성이 불태웠던 광장의 촛불이 이기적인 감정이 왜곡시켜 나락으로 떨어질까 우려되는게 과연 기우일까?

죄수의 딜레마처럼 정치인의 권력욕이 수백만 민초들이 싹틔운 민주주의의 꽃을 꺽지 않기를 바란다.

<염오봉 분당갑지역위원장 프로필>
ㅇ 제35회 행정고시 합격
ㅇ 감사원 부감사관(전)
ㅇ 안양대학교 겸임교수(전)
ㅇ 국민의당 정책위 부위원장, 분당갑지역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