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8·15 광복 70년을 맞는다.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이 날의 의미는 반만년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크고 값진 것이다. 민족과 국토가 송두리째 40여년이나 일제에 강탈당한 채 말이 있어도 제 나라말을 사용하지 못하고 글이 있어도 나라 글을 사용하지 못하는 수모와 수탈을 당해야했던 비극의 역사를 급기야 끝낼 수 있게 된 날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호자 백범 김구 선생이 첫째도 독립, 둘째도 독립, 셋째도 독립만이 소원이라고 했던 것처럼 광복이야말로 우리민족의 가장 큰 소망이었고 염원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염원했고 바라며 기뻐 뛰던 광복이 기적처럼 찾아왔지만 광복은 미완의 광복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광복과 함께 찾아온 어두운 그림자 분단이라는 어이없는 또 하나의 민족적 비극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은 8월11일, 즉 해방이 되기 4일전에 이미 남북에 3·8선을 그어 한반도에 대한 임시적 분할점령을 소련에 제안했던 것이다. 결국 민족분단의 비극은 빨리 태평양전쟁을 끝내고 싶던 미국과 아시아 공산화의 교두보가 필요했던 소련의 이해가 서로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따라서 한민족에게 독립의 기쁨을 안겨준 광복 70주년은 동시에 남북분단 70주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힘없던 이 나라 이 백성들은 힘겹게 광복을 맞은 자신들의 땅이 미국과 소련의 냉전의 희생 제물이 될지조차 모른 채 분단의 비극과 맞닥뜨려야 했던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나누어 점령한 임시적 분할선인 38선은 국토분단과 한국전쟁의 단초를 제공했고 7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대의 민족적 비극이자 한민족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큰 난관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38선은 휴전선으로 이름이 바뀌어 1953년 이래 지금까지 세계 역사를 통틀어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분단의 ‘철벽 국경선’을 만들어놓고 있다. 그래서 광복 70년은 그 숱한 세월동안 기쁨보다 슬픔을 더 크게 안겨주고 짐을 더 크게 지워준 무거움의 숫자이기도 한 것이다.

더욱이 광복 70년을 맞이한 지금 동북아시아 정세는 더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흡사 구한말을 방불케 하는 미국과 일본의 밀월시대가 열리고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하고 세계적 강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쟁탈에 나서며 북한이 핵위협을 가중하는 동북아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서 있는 대한민국은 남북통일의 힘겨운 민족적 과제를 떠안고 있다.

지난달 16일 일본의 집권당인 자민 공명당은 중의원 본회의에서 집단자위권 허용을 골자로 한 11개 안보 관련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민주당 등 5개 야당은 표결직전 퇴장했고 참의원의 최종 통과가 남아있지만 연립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때문에 처리된 거나 다름이 없다. 집단자위권은 미국 등 제3국이 공격을 당한 경우에도 자국이 공격을 받은 것으로 여기고 반격하는 권리를 말한다. 태평양전쟁의 주범인 일본은 방어수단 외의 군대를 운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헌법 9조를 그동안 유지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작년 7월초 헌법 9조 (전쟁 포기)에 대한 ‘해석적 개헌’ 방식으로 해외출병에 대한 합법화 가능성을 열었고 1년 만에 법적절차를 마무리 했다. 일본은 지난 4월말 아베총리의 미국방문 때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한데 이어 미국의 후방 보장아래 사실상 군사 대국화를 공식화한 셈이다. 미국 뉴욕타임즈는 지난달 20일 일본이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군국주의로 회귀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자국 국민은 물론 특히 주변국의 우려가 큰 이유는 일본이 2차 대전 당시의 잔학행위나 위안부문제 등에 대해서는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과거사문제가 청산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일본 우익은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일본의 부활을 위해 한국의 통일과정 혹은 유사시에 미국의 개입에 편승해서 다시 정한론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100년 전 가장 먼저 독도를 침탈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독도분쟁은 일종의 빌미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요즘 아베정권의 이중적 행태는 이 같은 우려를 부채질 한다.

일본 방위청은 지난달 20일 발표한 방위백서에 독도를 11년째 일본영토로 표시하고 독도영공을 일본의 영공으로 표시하는 등 그동안 양국의 외교관계 개선 노력에 또 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역사의 진실 앞에 오리발 내밀기와 모르쇠로 일관하며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긴장을 조성하는 일본의 몽니를 지켜보면서 문득 도산 안창호선생의 말씀이 생각난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고 일본이 일어나니 조선아 조심하라!”는 교훈이다.

김 철 수논설위원<아동문학가·美솔로몬대학교 한국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