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이다. 그리고 5일은 황금연휴 속에 묻혀버린 제93회 어린이날 기념일이다. 한국임상게임놀이학회가 지난 3월26일부터 4월8일까지 전국 초등학교 학생 5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어린이들의 절반인 50%가 어린이날 기념일에 받고 싶은 선물은 부모님과 함께 놀고 싶다고 했다. 오늘날 가장 가까운 부모와 자식이 한 집에 살면서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짧은 관계가 되어버린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현상이다.

어떤 부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셋방을 얻기 위해 부동산 중계인의 안내를 받아 아파트를 보고 마음에 들어 주인에게 계약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주인은 아이들이 딸린 사람에게는 방을 내 줄 수 없다고 거절 했다. 하는 수 없이 실망을 하고 돌아서는데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이가 다시 돌아와 집주인에게 말하기를 “아저씨, 그 방을 저에게 빌려 주십시오. 저에게는 딸린 아이들이 없고 아버지 어머니 두 분과 함께 살려고 합니다.”집 주인은 지혜로운 어린이의 말에 그만 감동되어 그 방을 빌려주기로 승낙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이다. 유대인들이 히틀러의 나치 수용소에 감금되어 지낼 때 수용소 간수들이 기르던 닭 한 마리가 밤사이 없어졌다며 수용소에 있던 유대인들을 모두 불러 한 줄로 세워놓고 총을 들이대며 닭 잡아먹은 사람은 빨리 나오라고 윽박을 질렀다. 만약 나오지 않으면 나올 때까지 한 사람씩 차례로 총을 쏴서 죽이겠다고 위협을 했다. 맨 앞에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서 있었고 두 번째에는 나이 어린 소년이 서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닭을 잡아먹었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자 독일군은 맨 앞줄에 서 있던 유대인 노인을 총으로 쏴 죽였다.

모두들 공포에 떨며 안절부절 하고 있을 때 어린 소년이 총을 든 독일군병사에게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누가 닭을 잡아먹었는지 제가 알고 있는데 그 범인이 누구인지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고 용서해주시는 겁니까?” 그러자 독일군 병사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면서 어서 그 범인을 말하라고 했다. 이 때 어린 소년은 방금 독일군 병사의 총에 맞아 죽은 맨 앞줄에 섰던 노인을 가리키며 “범인은 바로 저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독일군 병사는 약속대로 어린 소년과 함께 다른 사람들을 모두 돌아가도록 했다.

어린이의 순간적인 지혜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지식은 학교나 사회에서 배워서 아는 것이지만 지혜는 하늘로부터 내리는 은혜이다. 제 93회 어린이날을 맞으면서 우리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고 지도할 것인가는 부모에게 있어서 세상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다.

도로티 로톱트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어린아이가 꾸지람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비난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만약 어린아이가 적개심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면 싸우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면 죄의식을 배우게 되고, 만약 어린아이가 관대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격려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고마워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만약 어린이이가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정의로움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되고, 만약 어린아이가 풍부한 인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배우게 된다.”

부모님의 편애 속에 자라면 부모의 사랑은 받을 수 있지만 형제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며 상처를 받게 된다. 그래서 늘 적절한 사랑과 회초리가 아이들의 교육에 필요한 것인데 오늘날 모든 부모들이 일방적인 사랑에만 비중을 두고 훈계를 도외시하는 경향이 심각한 편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어린이날이 별도로 필요 없을 정도로 일 년 내내 어린이를 위한 맹목적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다. 그런데 정작 어린이 입장에서 보면 부모의 일방적인 사랑과 관심일 뿐 어린이들이 원하는 내용이 아니다.

어린이날의 유래는 일제의 강점기인 1922년 5월 어린이문화운동가인 소파 방정환 선생이 처음 어린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제정한 뒤 다음해인 1923년 5월 1일부터 행사를 가진바 있다. 이 날에 ‘소년운동 첫 선언’도 발표되었는데 소년운동의 숨은 공로자인 김기전이 초안한 이 선언문은 봉건시대의 윤리적 압박, 경제적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하며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할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제네바선언’이라고도 부르는 ‘국제아동권리선언’보다 1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그 후 어린이날은 5월5일로 바뀌었고 1954년 10월 유엔의 권고에 의해 각 나라마다 좋은 날을 택해 기념일로 지키게 된 것이다.

/김 철 수 논설위원<아동문학가·美솔로몬대학교 한국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