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국민들의 변화의 바람이 대선 공약을 지키라는 한 목소리로 메아리치고 있다. 그러나 정당인들의 생각은 처음부터 변화의 바람 따위는 아랑곳 없었다. 어떻게 차지한 자리인데 그렇게 쉽게 덥석 받아들이겠나? 그들이 오늘의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꽤나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고, 그 수업료를 다 변제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이런 상황에서 덜컥 그들의 이권을 지켜준 시스템을 포기할리 없지 않은가?

돈이 없으면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 선거만 해도 한두 푼 드는 것이 아니고 그전에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엄청난 금액의 자리 값을 내고 무수한 로비를 펼쳐야 공천을 통과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물불 안 가리는 선거전쟁을 치르고 승리를 거머줘야 금뱃지를 달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낸 자리가 4년의 안락을 보장한다.

정당별로 일정 지역의 당원들이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 후보, 지자체장 후보,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후보를 투표로 결정하는 정당공천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장점을 가지고 있는 제도이다. 지방의 유망한 정치인들을 정당을 통해 발굴하여 지방자치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로 기존의 소선구제를 폐지하고 중선거구제를 도입하고 기초의원 유급제를 시행하며 기초의회도 책임정치를 구현해보고자 출발하였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후보들이 공천되어 지역유지 등으로 일관했던 기초의회에 물갈이가 되어 원활한 활동을 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그런데 자신들의 권력유지 욕구가 강해지면서 차기 선거를 위한 알력 싸움으로, 공천권을 가진 현역의원들에게 반할 수 없는 맹목적 복종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잘못을 거론조차 못해보고 같은 당 소속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찬성표를 던지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는 경우 다음 선거 때 자신의 공천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 정당공천이 이루어지면서 주민에 의한 지방자치가 아닌 정당에 의한 정당자치가 되어 버렸다. 당원에 의한 투표는 요식행위가 되어 버렸고, 정당을 기초단체장과 의회의원을 조정하며 권력 강화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파해보고자 무소속 출마자들이 용감한 출사표를 던진다. 출마 후보의 역량이 훌륭한 수준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개인이 선거에 나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의 도전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 조직된 정당을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용케 당선되어 유능한 일처리로 두각을 보여도 소속이 없어서 차기 선거에서 낙선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많은 정치 후보자들은 당에 줄을 서고 어떡해든 공천을 받아내려고 갖은 수를 다 동원하게 되는 것이다.

공천을 폐지하게 되면 정당의 끈이 느슨해지고 지역의 유지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 단체에서 후원하는 후보들이 유리해진다. 또한 일정 비율이상의 여성후보를 공천하여 여성의원을 확대하였는데 공천폐지는 이러한 특혜를 사라지게 하여 여성후보의 당선률을 낮추게 된다.

공천 폐지 역시 지역유지 등 지역 텃세에 밀려 유망한 신진후보의 등용이 어렵게 하고 여성후보의 활동 역시 어렵게 한다. 단순히 공천폐지가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중선거구제로 1명을 뽑는 기초단체장선거의 경우 개인이 후보자의 활동능력 등 후보자의 비교 선택이 어려워 인지도가 낮은 사람은 배제된다. 따라서 현직에 있는 단체장들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되고 이 역시 기존 정치세력의 강화가 쉬운 구조를 만들어 내게 된다. 또한 검증받지 못한 무자격 후보들의 난립으로 홍보에 치중한 검증 안 된 후보가 덜컥 당선될 수도 있어 각종 부작용이 야기될 수 있다.

지난 대선당시 여야가 모두 공약으로 내세웠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의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앙정치의 파워 견제 폐지냐 토호 세력의 파워 견제냐 양자 다 문제를 가지고 있다.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정당공천제 폐지는 핑퐁게임을 하다가 정치개혁특별위원회로 넘겨졌다.

대의제 민주주의냐 풀뿌리 민주주의냐 선택이 쉽지 않다. 기초의회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정당공천제와 함께 도입된 비례대표제의 유지, 지방의회 선출직 여성 의무공천문제, 여성후보추천보조금 등 제도적 개선도 함께 안고 가야 한다. 2002년 3.2%인 지방의회 여성참여 비율이 20%를 넘어서고 있는 지금 과거로 회귀하여 얻는 이익은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국민이 원하는 것은 변화이다. 기득권 세력의 권력 강화에 눈먼 시스템이 아닌 역량 있는 사람의 기용으로 더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을 희망한다. 공천폐지의 주장도 현재의 상황에서는 국민이 원하는 환경의 구성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뜨겁게 달궈진 공천문제, 정치개혁특별위원회로 넘겨졌다지만 이 역시 하나의 요식행위가 아닌가. 제도가 바뀌려면 먼저 그 제도를 잘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의 구성을 확인해야 한다. 섣불리 제도를 바꾸었다가는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많아 시행착오를 겪게 하기 때문이다.

/김용훈 논설위원(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