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총리 “혁명적 발상으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 마련”
정홍원 국무총리는 24일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 “오늘 소조기에 조류상황이 양호하다고 하므로 총력을 기울여 구조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총리는 세월호 사고 9일째에 접어든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온 국민과 함께 한 사람의 생존자라도 돌아오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으나, 구조소식이 없어 안타깝고 초조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어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이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며 “비통함에 잠긴 가족들에게 성심을 다해 어려움을 최대한 해결해 조금이라도 고통이 덜어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해 줄 것”을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정 총리는 또 지난 21일 박근혜 대통령이 지시한 사고수습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과 관련해서는 “각 부처는 지시에 부응하는 근원적 대책을 신속하고 차질없이 진행하라”고 주문했다.
또 “‘안전혁신 마스터플랜’ 마련시에는 민간의 안전 전문가를 적극 참여시키도록 해 혁명적 발상으로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정 총리는 내일이 ‘법의 날’임을 언급하며 “우리사회가 법·규정·매뉴얼이 있어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잘 지켜지지 않고 비정상적인 불법과 관행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의 원인도 안전을 위한 법령과 규정이 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는 총체적 안전 불감증과 책임의식 부재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모든 부처는 안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수칙 준수와 의식개혁’이라는 인식하에 ‘공직자가 솔선해 안전규범이 바로 서고 실제 상황에서도 작동되는 사회’가 실현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다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 안건인 공과대학 혁신방안과 관련해서는 “연구년을 맞은 교수의 산업체 파견을 활성화하고 산업계 주도의 협력사업을 대폭 확대하며 2017년까지 100여개의 연구소기업과 함께 학교기업도 육성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공과대학 혁신은 미래성장을 위한 인재양성과 연구결과 활용, 취업과의 연계도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관계부처는 산·학·연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공학교육이 실질적인 창조경제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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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국총리님 아시싶히 해난사고로 인한 고충이 많겠읍니다.
이런 대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무슨 대책을 강구하셨나요?
땅 물 하늘은 날벼락이 자주 발생하는 인간의 터전입니다. 대한민국은 부실공사가 만연된
인재 다발지역이라고 보는데요. 어떻게 하면 항구적인 대책 마련을 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저로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안 나옵니다.
먼저는 비리서부터 정상치보다 낮고 싼 가격의 부실 자재들 때문에 항상 문제가 터집니다.
임시 처방적인 땜빵식은 이제 끝장을 내고, 규정에 적합한 모든 대한민국 사고뭉치들이 안 나올 수 있도록 제대로 한 번 시작 해주십시오. 육상 해상 항공 등 자칫 잘 못하면 엄청난 국가적 재난에 봉착할 위험 효소들이 많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여성이라서 이곳 저곳 현장직에 대해선 잘 모르실 것입니다. 정총리께서 남자로서 대한민국을 재난국가라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비아냥거림에서 안전 제일국가라는 명성을 듣도록 새나라를 만들어 주었으면 바랍니다. 무엇보다 남자가 나설 때 총체적으로 재난 돌파를 할 수 있읍니다. 한 손엔 삽과 한 손엔 호미를 들고 부정 부패의 고리를 확실히 끈어 주십시오. 그러면 이번과 같은 재난은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국회애서 법을 만들면 행정부는 움직인다아 법업슴면 어떻게 해야하나아 대톨령이나 국무촘리 행정브에게 말해주어야한타 법전에 먼저 국민 사람이살아야: http://youtu.be/z1y8ytkR78E
불만있느분들 만나보고 챙겨주기 그런데 군사정부시절에서도 힘들엇던 그러나 시도 또 해봄
지움버튼업다고 할말못하는 업슴 지금은 유신시대가 아님 대통령 잘모시라 그래야 국민국가가 행복한것 밑에사람들이 잘못하기때문
야당공동대표가 만나러 가도 안만나주는데 국정협력을 바라겠나아 여당대표랑 같이 만나자고 해봣 국가위기극복 국가협으해
故 이춘상 당신을 보내며.: http://youtu.be/AzaBptu4Hbo
치적 결단력과 협상력 타의 추종 불허-신기하 의원
2001.03.05 (월) 00:00:00
박상수 (webmaster@namdonews.com)
지난 97년 8월6일 새벽 1시35분께 승객 231명과 승무원 23명 등 모두 254명을 태운 대한항공 KE-801편 여객기가 서태평양의 미국령인 괌의 수도 아가냐의 ‘니미츠 힐’에서 추락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이 사고로 승객 200여명의 원혼이 머나먼 이국땅에 묻혔다.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탑승객 29명 중 24명이 숨졌으며 아까운 정치인 하나를 잃어야 했다. 그가 바로 신기하 의원이다. 신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광주 동구 당원 수련회를 위해 떠난 여행길에서 부인 김정숙씨와 함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버린 것이다.
신 의원은 당시 4선의원으로 전남대 재학 시절, 4·19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민추협 등을 통한 민주화 투쟁에 이어 정치에 뛰어든지 12년만에 뜻밖의 변을 당했다. 그만큼 주위 사람들에게는 그를 잃은 아쉬움은 컸다.
신씨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85년 제12대 선거때 부터이다. 전남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 판사와 변호사로 생활하던 그가 정치에 입문했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던 그가 정치라는 험난한 길, 더구나 야당의 길을 택한 것에는 지역적 특색을 감안하더라도 결정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가 출마한 광주 동구에는 민한당의 이필선, 신사당의 안광양, 민족당의 김병수, 민정당의 고귀남, 무소속의 임재정씨 등 6명이 출마했다. 이필선씨의 경우 5대와 1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고귀남씨는 10대와 11대, 임재정씨는 11대 현역 국회의원으로 지명도나 정치적 경륜에 있어 정치 초년생인 신씨를 월등히 능가했다.
이 틈바구니에서도 결과는 신씨의 압승으로 끝났다. 선거구가 통합돼 2명을 선출한 선거에서 신씨는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망명길에서의 귀국에 따른 신당 바람을 타고 무난히 당선됐다. 선거에서 신씨는 9만6천449표를 얻었으며 고씨는 6만680표를 득표했다.
주위사람들은 이같은 그의 정치적 결단을 두고 흔들리지 않은 정치적 소신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결정에 대해서는 주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이는 야당 원내총무 시절 예리한 판단과 정치력, 뛰어난 협상력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당시 여당 원내총무는 현재 이한동 국무총리였다. 이 총리와의 협상은 정국 현안을 풀어나가는 실마리를 제공했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도 청와대로 야당 총무인 그를 불러 사안에 대한 논의를 했다 한다.
북구가 분리된 13대 선거에서 신씨는 동구에 평민당 후보로 출마했다. 12대 선거에서 동반 당선된 민정당의 고귀남 후보와 2파전을 양상을 띄었다. 그러나 황색돌풍을 일으킨 야당의 바람은 신씨의 승리로 끝났으며 재선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당시 선거는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광주지역 5개 선거구에서 모두 평민당 후보가 당선됐으며 북구의 정 웅씨는 12만7천여표를 득표해 전국 최다득표 등 3관왕에 올랐다. 또 서갑에서는 정상용씨가 광주일고의 선배이자 고향인 함평 선배인 이영일씨를 누르고 당선됐다.
2선을 무난히 달성한 신씨에게도 힘겨운 선거가 있었다. 민주화의 열기를 타고 치러진 92년의 14대 선거이다. 감사원 감사관 출신으로 양심선언과 함께 기존 정치의 변혁을 요구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문옥씨 때문이다. 이씨는 재야와 사회단체의 절대적인 지지속에서 재선의원의 신씨와 맞붙었다. 이씨의 여론몰이는 신씨의 선거캠프까지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신 의원은 의외로 당선을 자신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유권자들과 악수를 하면서 느낀 힘의 감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예전과 다름없는 힘의 감각을 느꼈다며 신씨는 무리없는 당선을 측근들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예측은 그대로 결과로 드러나 신씨는 3선의 중견의원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국회에 입성한 신씨는 94년 5월 제14대 국회 후반기를 이끌 민주당 원내총무 경선에 도전했다. 김태식(전북 완주) 총무와 맞붙은 선거에서 신씨는 49대 46으로 승리했다. 신씨는 당초 당내 비주류라는 불리한 여건으로 인해 이기택 대표와 동교동계, 김원기 최고위원 등의 지지를 받고 있는 김 의원에게 열세가 점쳐졌으나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면서 이전 총무 경선에서의 패배를 설욕했다. 신씨는 김상현, 정대철 의원 등 비주류와 이부영 최고위원 등 개혁정치모임의 전폭적인 지원과 선거과정에서 내세웠던 당직순환론이 호응을 받아 범주류측 일부 의원들의 표를 흡수, 당선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96년 15대 선거에서 신씨의 발언은 커다란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다. 금기시 되었던 김대중 총재의 차기 후계론을 거론한 것이다. 신씨의 발언은 가시화하기에는 이르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취해진 것이었다. 발언은 김 총재에 대한 도전으로 비춰지는 등 확대 해석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겪었다.
신씨에게 97년의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동구 지구당 당원 연수차 괌으로 향하던 당직자 24명이 사고 여객기에 탑승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는 차세대 정치 지도자의 부부를 죽음으로 몰았다. 신씨의 죽음은 그만의 죽음이 아니라 노모의 가슴에 통곡으로 남겼다. 노모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후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아 결국 사고가 난지 50여일만에 아들 부부 곁으로 떠났다.
생전 측근들은 죽은자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신씨에 대한 평가는 남다르다. 외형적으로 풍기는 권위주의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다정다감한 인간으로 평하고 있다. 반면 정치적 결단력과 판단력, 협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여야간에 정쟁으로 세월을 보내는 현재의 국회를 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의 존재가 아쉽다고 회고하고 있다.
매년 함평군 나산면 송암리 묘소에서는 지역 정치인을 비롯한 지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박상수
세운호희생자 추모 리본/색갈을 검정색으로 바꿔 주세요!!
모든장의 의식에 색갈은 역대로부터 검정색으로 지켜저 왔읍니다.
방송국 아나운서 님들의 점퍼도 너무 화려한 노랑색으로 바뀌었고…
누가 시작한지도 모르게…노랑색 리본달기로 슬픔을 함께하는
추모행사에… 어떤정치집단을 암시하는 노랭색이 판을치고 있읍니다!!
관련부처에서는 신속히 이일에 대처해 주시기바랍니다!!
청와대 홈피에도 노랑색 리본을 올려 놓으셨는대….
생각없이 한건지… 공직자중에 누구가 의도적으로 한건지… 의심이됩니다!!
國隊長你們大家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