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항은 지금 수많은 목소리 속에 놓여 있다. 물류 업계는 경쟁력 강화를, 환경 단체는 생태 보존을, 노동계는 안전을, 시민 단체는 삶의 질 향상을 주장한다.

각자의 주장은 모두 타당하지만, 문제는 이 목소리들이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평택항의 미래는 불확실해지고 있다.

지난 3월 26일 열린 평택항정책개발협의회 정기총회에서는 '친환경 항만 조성', '배후 단지 기능 고도화', '시민 친화형 공간 전환' 등 다양한 제안이 오갔다. 그러나 이들 제안 간 우선순위나 실행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은 공유되지 않아, 정책적 일관성과 전략적 조율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가장 큰 갈등 중 하나는 구 여객 터미널 부지 활용 문제다. 일부 시민 단체는 이곳을 시민들이 바다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친수 공간으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반면, 물류 업계 관계자들은 이 공간을 물류 단지로 활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같은 지역에서 서로 다른 미래가 그려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갈등은 평택항만의 고유한 문제가 아니다. 부산 북항 재개발은 2008년부터 시작되어 15년 넘게 진행 중이다. 물류 기능을 유지하면서 시민 공간을 확대하려는 노력은 여러 차례 계획 수정으로 이어졌고, 인천항 역시 시민 친화 공간 전환 과정에서 물류 동선 왜곡 등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두 항만 모두 이상과 현실의 충돌로 갈등을 겪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이 지역 내 소통과 조율을 통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갈등이 심화되면 중앙 정부가 개입하거나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결정하지 못한 지역은 선택권을 잃게 된다.

평택항도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과감한 전략 수립과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변백운 공동대표의 발언, “모든 시민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이동훈 상임 공동대표의 축사는 의미 있는 메시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메시지들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조율할 것인가이다. 발전의 정의가 각기 다른 상황에서, 그 정의를 하나로 모을 지도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평택항을 위한 다양한 목소리는 지역의 열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목소리들이 결론 없이 남는다면, 그것은 갈등이 아닌 방치에 불과하다. 항만을 통해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려면 이제 말이 아닌 설계도, 주장보다 합의, 비전보다 실행 계획이 필요하다. 평택항,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