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 사태를 바라보는 기자로서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단순하다.
“선관위는 정말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예측했지만 준비를 덜 했을까.”
50개 투표소, 22곳은 투표 중단… 숫자에 드러난 실패
중앙선관위 발표에 따르면, 전국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한 투표소는 50곳, 이 가운데 22곳은 투표가 실제로 일시 중단됐다. 서울 송파구에만 14곳이 몰렸다.
송파 잠실의 한 투표소에선 밤 10시가 넘도록 투표가 이어졌고, 분통이 터진 유권자들이 “투표함 못 나간다”고 길을 막아서는 장면이 그대로 카메라에 담겼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는 ‘특정 동네의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예측·배분·경보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하지 않았다는 집단적 실패였다.
예산은 늘었는데, 용지는 덜 찍었다
이후 취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더 뼈아프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선관위는 과거보다 선거 관련 예산은 더 받았으면서도, 정작 투표용지는 이전보다 적게 인쇄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비분을 줄이면 당장의 비용은 아낄 수 있다.
하지만 투표율이 평년보다 조금만 올라가도, 바로 ‘부족 사태’라는 폭탄이 된다.
선관위는 “과거 투표율, 인구 변동 등을 고려해 산정했다”고 해명했지만,
올해만큼 정치적 관심과 갈등이 높은 선거에서 이런 보수적 계산은 사실상 도박에 가까웠다.
현장의 카톡 경보, 그리고 뒤늦은 ‘대국민 사과’
현장 대처도 매끄럽지 못했다.
선관위는 잔여 용지가 500매 미만으로 떨어지면 담당자에게 카카오톡 경보를 보내고,
인근 투표소와 예비 물량을 조정하도록 하는 매뉴얼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보 이후에도 제때 추가 인쇄·수송이 되지 않아 투표가 끊기고,
투표소마다 안내 방식이 달라서 어떤 곳은 “조금만 기다려 달라”, 어떤 곳은 “오늘 중에 못 할 수도 있다”는 말이 오갔다.
혼란이 커지자, 중앙선관위는 밤 9시 대국민 사과 방침을 밝히고, 이튿날 새벽 과천 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허철훈 사무총장은 고개를 숙이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공직선거법상 투표용지 부족은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법 해석으로는 맞는 말일지 모른다.하지만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간 시민들, 밤새 투표소 앞에서 ‘개표 중단’을 외쳤던 사람들의 귀에는 “그래도 선거는 유효하니 그냥 넘어가자”로 들릴 뿐이었다.
사과와 사의 표명, 그러나 구조 진단은 아직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사태 직후 사의를 표명했다.
대통령은 “국민주권의 근간을 훼손한 중대한 사안”이라며 검·경 합동수사본부 구성을 지시했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국정조사를 말한다.
겉으로 보면 책임지는 모양새는 갖춰졌다.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하나다.“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예비 투표용지 비율을 법·규정으로 최소치가 아니라 상향 기준으로 정할 것인지,
인쇄·수송 시스템을 ‘당일 긴급 대응’이 실제로 가능한 수준으로 재구성할 것인지,
투표소별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공개하는 디지털 관리 체계를 도입할 것인지,
현장 사무원 교육에서 이런 상황을 가정한 실전 훈련을 의무화할 것인지.
지금까지 선관위에서 나온 답은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원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선관위가 지켜야 할 건 ‘체면’이 아니라 ‘신뢰다’ 이 사태를 정리하자면, 선관위의 대처는
발생 이후에는 사과와 추가 인쇄, 투표 연장 등 최소한의 봉합은 했다.
그러나 발생 이전에는 예비분 산정, 시뮬레이션, 현장 교육 등에서 명백히 안이했고,
발생 직후에는 “재선거 사유가 아니다” 같은 법리 방어에 급급해 신뢰 회복의 타이밍을 놓쳤다.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체면이 아니다.
“이 기관이 관리하는 선거라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유권자의 신뢰다.
투표용지 가 모자라 생긴 혼선 앞에서, 선관위는 그 신뢰를 얼마나 잃었는지부터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그 신뢰를 되찾기 위한 구체적인 수치와 계획을 선거법 조항이 아니라, 유권자의 눈높이에서 설명해야 한다.
그게 이번 사태 이후 선관위가 보여줘야 할 진짜 ‘대처’다.
이준수 기자 ybcnews@ybcnews.co.kr 이준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편집 : 2026.06.10 (수) 08: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