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은 어버이날 기념일이었다. 붉은 색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자손들로부터 인사를 받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한 폭의 그림마냥 정겹기만 하다. 1년 365일 가운데 단 하루도 부모는 자식들에 대한 생각을 잊은 적이 없지만 자식들은 어렵고 힘들 때가 되어서야 부모를 생각하고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2년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이날이 되면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았지만 지금은 하얀색 카네이션으로 바뀌었다. 어버이날은 미국의 한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필라델피아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휜 카네이션을 하나씩 나누어 준데서 유래된 이후 전 세계에 퍼졌다. 원래는 5월 둘째 일요일이었던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지정하여 기념해오다가 1973년 3월30일 대통령령으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 제정 공포되면서 1974년부터 ‘어버이 날’로 변경되었다.

이날 각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선물을 하거나 카네이션을 달아드린다. 또한 정부에서는 정부주관기념일로 지정하여 어른들을 위한 각종 기념행사를 벌이며 효자, 효부들을 표창하고 있다. 사회의 급속한 변화로 인해 자식들의 생각과 부모의 생각에 많은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은 거의 무조건적이요 본능적인 내리 사랑이다. 현대사회의 커다란 불행의 요인가운데 하나가 가정에 아버지의 존재가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실종된 상태에서 가정은 험한 풍랑이 이는 바다위에 떠 있는 나뭇잎처럼 표류하고 있는 형국이다.

아버지의 위치가 가장으로서의 권위 상실은 물론 아예 고개를 떨구어 트린 채 어깨가 축 처진 남자만이 가정의 한 구석에 그림자처럼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비단 가정에서 뿐만 아니다. 우리사회에서도 사나이 대장부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의리의 사나이, 멋진 사나이라는 말은 이미 흘러간 유행가 가사가 되어 빛이 바랜 채 나풀거리고 있을 뿐이다. 인류사회의 근간이자 기초인 가정은 가장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로 구성되는 최소한의 사회요 보금자리이며 행복의 원천이다. 또한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아버지의 역할이야말로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아버지들은 집에서 자기 의사대로 TV의 채널 하나 마음대로 돌리지 못하는가 하면 끼니가 되어도 밥 달라는 말조차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는 아내의 외출에 대해서도 “어디를 가느냐?”, “언제 돌아오느냐?”, 조차 감히 물어보지 못할 정도의 힘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자식들에게 있어 아버지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주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피곤에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이날따라 하나 밖에 없는 여섯 살 난 외아들이 잠을 자지 않고 아버지를 기다리고 잇다가 반갑게 맞으며 말을 건넸다. “아빠,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쳐다보며 그러라고 했더니 “아빠는 일 나가시면 한 시간에 돈을 얼마 버세요?”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건 알아서 뭐하려고 하느냐고 하더니 대략 한 시간에 2만원 정도는 번다고 말해주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더니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다짜고짜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며 돈 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아들이 원하는 대로 돈 만원을 주었더니 아들은 자기 집안에 있던 돈 만원을 합쳐 도합 2만원을 아버지께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여기 돈 2만원을 제가 드릴테니 내일 저하고 한 시간만 놀아주세요. 저는 아빠하고 같이 놀고 싶어서 용돈을 쓰지 않고 이렇게 모아두었어요.” 촉촉이 젖어있는 아들의 영롱한 눈동자와 아버지께 돈을 내미는 조약돌 같은 아들의 손을 보는 순간 아버지는 와락 아들을 끌어안으며 뜨거운 눈물을 주룩 흘리고 말았고, 아버지의 품에 안긴 아들은 이 세상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 언제까지나 떨어질 줄을 몰랐다.

/김철수 논설위원(아동문학가·美솔로몬대학교 예술대학장)